그냥 저냥

영화 1917 후기(스포X) - 황홀하되 절박하게. 영상미부터 감정선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던 기생충의 경쟁작 + 1917 스포일러 리뷰. 아이맥스에서 봐라 이 말이야

김나신 2020. 3. 1. 15:59

이 재밌는 걸 혼자서 보고 온, 김나신입니다.

 

오우.... 영화리뷰는 처음인데 첫 리뷰가 1917이라니. 너무 좋은데?

 

간단하게 스포없는 리뷰와 뒤에 스포일러 있는 리뷰로 나눌 겁니다. 스포없이 영화 보고싶은 분들은 중간에 나눠놓은 부분 뒤로는 절대!! 안 보시는 걸 추천. 스포당하고 영화보는 것만큼 슬픈 게 없습니다... 저도 그 마음 알아요.

 

그럼 가볍게 예고편부터 보여드리고 시작하겠습니다.

 

전 이상하게 1차 예고편이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처음 예고편 보자마자 "이건 봐야돼"를 연발했습니다.

 

1. 영상미

 

솔직히 얘기를 안 할수가 없는 부분입니다. 1917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의 거의 5할 이상은 영상미가 차지할 듯.

 

이미 다른 분들도 많이 언급해서 잘 알려져 있지만 1917은 영화시작부터 끝까지 같은 시점에서 촬영이 끊기지 않고 진행된 듯한 '원 컨티뉴어스 샷(One Countinuous Shot)'으로 진행됩니다. 때문에 진짜 주인공 스코필드 옆에서 같이 달리는 종군기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근데 이게 생각보다 와! 쩐다!! 라는 건 아니었습니다. 딱 몰입감을 높여주는 수준. 그리고 이걸 알고 가면 어디가 편집점인지 묘하게 의식하게 됩니다. (대략 5~6군데 정도는 영화 보다보면 눈에 보입니다.) 처음 볼 때는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그냥 보는 게 나쁘지 않을 듯.

 

오히려 원 컨티뉴어스 어쩌고 같은 복잡한 얘기보다 더 감탄한 건 영화의 색감.

 

보통 메마른 분위기를 많이 연출하기 위해 색도 회색톤에 사람들도 회색톤 등등 전쟁영화에서의 영상미는 빵빵 터지는 폭탄세례나 대규모 전투씬이지 화려한 색감을 생각하는 분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1917은 보면 정말 와... 이렇게 찍을 수 있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황홀한 배경을 보여줍니다. 아니 영화보면서 진심으로 관광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게 정상인가 싶을 정도의 압도적인 영상미를 자랑합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자세한 건 뒤에서 더 얘기하겠지만 정말... 장면 하나하나가 뇌리에 깊게 박힙니다.

 

이번 1917은 계속 얘기하겠지만 정말 아이맥스관에서 기왕이면 꼭 보는 걸 추천합니다. 이 영상미는 꽉찬 스크린으로 꼭 즐겨야 아깝지 않습니다.

 

2. 음악

 

음악은 저 지금도 1917 ost 들으면서 글 쓰고 있습니다. 영화 내내 들리는 음악이 정말 잘 맞습니다.

 

참고로 가사가 나오는 음악은 딱 한 번 있는데 이게 진짜... 처음 들었을 때 그냥 나도 구원받는 기분을 느낍니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예기치 못한 순간에 잔잔히 그 음악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때 느끼는 감정으로 주인공에 완전히 동화되어감을 느낍니다.

 

'기생충'도 음악은 훌륭했지만 확실히 음악상은 얘가 더 받을만했다는 게 절로 느껴집니다.

 

3. 스토리

 

스포되지 않는 선에서 얘기하는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주인공 두 명이 1,600명이 있는 부대의 공격명령을 취소하라는 전보를 전하러 15km의 거리를 이동하는 것.

 

스토리는 복잡할 것 없습니다. 딱 저 문장 내에서 조금의 변형이 있을 뿐 영화는 처음부터 하나의 목적을 향해 죽어라 달립니다. 때문에 뭔가 관객들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고 감정 이입에 어려움을 느낄 수도 없습니다. 내가 아침까지 전보 안 전달하면 1,600명이 죽는다? 별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영상은 황홀하지만 스토리에 깔려있는 인물은 감정선은 '절박함'입니다. 가면 갈수록 변하는 표정에서 느껴지는 절박함. 마지막까지 가면 전투씬임에도 인물이 달리는 그 하나만 바라며 제발...ㅠㅠ 이라는 생각이 뿜어져 나옵니다.

 

다만, 기존의 전쟁영화들에서 이미 쓸만한 메세지는 다 넣었기에 사실 그렇게 와닿는 메세지는 딱히 없습니다. 생각없이 보기 좋은 영화. 기생충이 계층사회의 문제를 굉장히 깊게 다뤘다면 1917은 전쟁 속에서의 절박함이란 그 감정 하나만을 묵직하게 전달합니다. 그렇기에 원 컨티뉴어스 샷도 그렇고 영화는 최선을 다해 저같은 영화관람객을 전장 한복판에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끔 스크린 안으로 밀어넣습니다.

 

확실히 그게 잘 된 것 같고 괜한 메세지(영국뽕(?)이라든가, 전쟁의 참상, 왜 우리가 이겨야하는지 등등)를 넣지 않아 오히려 영화의 집중도를 해치지 않습니다. 저는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4. 종합

 

1917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전쟁영화 장르의 정점을 찍어보자"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통 장르영화는 하나씩 정점에 다달한 '고전'이란 걸 가지는데 전쟁영화는 모두가 꼽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들 수 있겠습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정말 솔직히 말해서... 치사한 영화입니다. 전쟁영화가 던질 수 있는 거의 모든 메세지를 담아버렸고 영상미와 음악, 분위기, 스토리, 배우 연기까지. 정말 모든 면에서 능가하기 힘든 수준의 수작을 만들어버렸습니다. 후배 감독 따위 배려하지 않는 스필버그의 인성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제작비도 더럽게 높아졌어... 대규모 전투씬을 영화시작부터 틀어주는 방식이라서 이후부터 나오는 전쟁영화의 제작비를 비약적으로 상승시켜줬습니다. 안 그래도 흥행하기 참 힘든 장르인데..ㅠ

 

1917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다르게 제1차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사정이 좀 다르긴 합니다. 그러나 1917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전쟁영화의 새로운 정점을 찍습니다. 대규모 전투씬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매우 참신한 스토리를 내놓는 건 아니지만 전쟁영화가 이런 영상을 보여줄 수도 있나?? 하는 감탄을 하게 해 장르의 새로운 한계를 뚫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그야말로 지금까지 나온 영화 기술의 최고 정점을 전쟁영화 장르에 다 때려박았다는 느낌. 그렇기에 눈과 귀가 즐거운 와중에 생각은 그 절박함에 공감해야하기에 곧고 묵직하며 단순한 스토리로 뒷받침했습니다.

 

기생충은 일단 2019년에 개봉했으므로 2020년에 본 최고의 영화는 1917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 코로나가 이 흥행을 막아버리네 진짜.

 

수작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영화. 1917입니다.

 

아이맥스로 꼭 보세요. 두 번 보세요 진짜.

 

번외. 기생충의 경쟁작?

 

잘 알려져있듯이 아카데미 수상 레이스에서 기생충의 가장 강력한 경쟁작으로 꼽힌 게 바로 1917입니다.

 

두 영화 모두 봤을 때 '기생충'과 '1917'은 지향하는 바가 많이 다릅니다.

 

'기생충'은 일단 장르를 정의할 수 없습니다. 블랙코미디의 탈을 쓰고 있지만 호러영화이기도, 스릴러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모두가 기생충의 장르 = 봉준호라는 말을 쓰는 겁니다.

 

기생충은 즉, 장르를 뛰어넘어 영화 그 자체가 하나의 장르가 된 작품입니다. 게다가 그 안에 담겨있는 메세지는 모두가 매우 깊고 심각하지만 동시에 직관적으로 다가오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습니다. 칸 영화제 같은 예술영화가 상 받는 영화제 출신임에도 "해석이 굳이 필요없는 영화'"라는 말이 잘 어울립니다.

 

반대로 1917은 한 장르의 정점을 찍은 작품입니다. 1917이 무슨 다른 장르를 넘어든다든가, 강력한 메세지를 준다든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전쟁영화라는 장르 안에서 정말 할 수 있는 모든 걸 이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카데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줘야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확실히 기생충이 받을만합니다. 1917은 훌륭한 영화이지만 기생충처럼 영화사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떤 대단한 전환점이나 충격을 안겨준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동시에 기생충은 영화관에서 보든, 솔직히 스마트폰으로 보든 그 충격과 생생함에서 차이는 적은 편. 반대로 1917은 아이맥스 같이 거대한 영화관에서 봤을 때의 경험이 정말 남다릅니다.

 

둘 다 10점 만점을 줄만큼 훌륭하지만 복잡하지만 이걸 단순하게 만들어 관객에게 전달하고 장르 그 이상의 무언가를 성취한 기생충이 진정한 '작품상' 감이 아닌가 합니다. 1917은 솔직히 음... 스토리가 단순하니까요.ㅎ

 

그것보다는 기생충이 개봉할 때 하필 같이 열려서 운이 안 좋은 케이스.ㅋ

 

이상! 스포일러 없는 1917 후기였습니다.

 

NA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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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서부터는 영화 스포일러 다 하는 후기입니다. 얼릉 얼릉 스포일러 당하기 싫으신 분들은 영화 본 후 들어와 주세요.ㅋㅋㅋ

 

영화 전체 스토리보다는 제가 가장 감명깊게 느꼈던 부분만 골라서 그냥 적어보려 합니다. 어차피 영화스토리는 저보다 설명 더 잘하는 꺼무위키라든가... 수많은 유튜브 채널이라든가... 워낙 많습니다.

 

1. 원 테이크 샷

 

아, 영화가 원 테이크로 찍었지만 편집점이 몇 군데 보인다고 했는데 그 외 편집점에 대한 비교적 자세한 내용은 밑의 영상이 제일 좋은 듯하니 참고.

 

 

쉽게 얘기하면 아주 잠깐 화면이 까매지는 구간이나 바위나 지나가는 엑스트라 같이 잠깐 카메라의 시야를 가리는 것을 통해 중간 중간 편집점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와 쩐다... 라는 생각이 들지만 의외로 50년 전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이미 고안했을 정도로 아주 고전적인 기법이기도 합니다.

 

원 컨티뉴어스 샷, 쉽게 얘기에 원 테이크샷으로 유명한 영화는 '올드보이'의 장도리씬

영화 '올드보이'의 장도리 씬

봉준호 감독 작품인 '살인의 추억' 초반 장면인 논두렁 사건현장 샷

그 외에 또 꼽으라면 영화 '변호인'에 나오는 송우석 변호사의 변론 씬 정도가 있겠습니다.

(왜 이것만 사진이 크냐...)

변호인이 보통 일반적인 롱 테이크 샷, 원 테이크 샷의 정석입니다. 인물 혼자 떠드는 장면은 그냥 배우가 대사만 잘 외우면 되는 아주 쉬운 컷. 그래서 법정 씬이나 설명 씬에서 이런 원 테이크 샷을 정말 자주 씁니다. 의외로 익숙한 기법.

 

'올드보이'가 특히 유명해진 건 10명은 족히 넘어가는 엑스트라들과 주연 배우들이 수십~수백 개 되는 합을 맞춰야 하는 액션씬에서 원 테이크를 쓰는 정신나간 짓을 했기 때문입니다. 히치콕 감독님도 그런 건 안 했어,,,, 그러나 그렇게 했기에 화려한 액션이 아닌 오대수의 절박함과 고독함이란 감정을 액션으로 전달하기 좋았습니다.

 

실제로 영화에서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오대수의 그 피곤하면서도 절박한 액션 때문에 정말 쉽게 감정이 이입됩니다.

 

이번 1917도 마찬가지입니다. 원 테이크라고 해서 대단히 화려하거나 엄청나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어디서 총알 날라올 줄 모르는 상황에서 뛰어야 하는 인물의 절박함에 극히 공감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냥 멀리서 지켜보는 영화 관람객이 아니라 진짜 종군기자라도 된 듯 스코필드가 구르고 물에 빠지고 독일군한테 쫓기면서 어우,,, 진짜 미치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눈이랑 귀는 영상미와 음악으로 즐거운데 뇌는 그 와중에 너무나 절박한 그 마음에 공감해 입이 바짝바짝 마르게 합니다.

 

황홀한 영상미와 축축한 전장터의 배경이지만 한없이 영화는 매마른 감정을 전달합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한없이 매마른 배경을 가지고도 다채로운 인물의 감정을 전달하는 것과는 정반대. 그래서 '새로운 전쟁영화란 장르의 정점을 찍었다'란 말을 쓸 수 있는 겁니다.

 

2. 인물의 감정선

 

일단 주인공은 처음에는 둘이지만 중반에 '블레이크'가 사망하면서 딱 한 명, '스코필드'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처음에는 괜히 블레이크가 골라서 반 쯤 끌려온 느낌으로 묵묵히 짜증내며 걸어가지만 블레이크의 사망을 기준으로 스코필드의 감정선이 다양하게 변합니다.

 

특히, 감명깊었던 부분은 블레이크 시신을 수습한 후 지원나온 다른 부대의 트럭에 얻어탄 장면.

(그 장면이 없길래 다른 걸로 대체)

다른 부대의 트럭에 얻어탄 상태인데 옆에서는 다른 부대원들이 별 시덥지도 않은 농담이나 따먹으며 있습니다. (솔직히 뭔 내용인지 기억도 안 납니다.)

 

근데 자기는 방금 친구가 눈 앞에서 죽고 그걸 제대로 묻어주지도 못하고 오는 길입니다. 심지어 가야하는 부대에는 그 친구의 형이 있습니다. 형 구하러 가겠다고 나선 동생의 죽음도 알려야 하는 상황.

 

죽을 듯이 괴롭습니다. 대사 한 마디, 대단한 표정변화, 하다못해 우는 장면 하나없이 인물의 슬픔이 가슴을 때려박습니다.

 

막, 그 있잖아요? 일본 애니에서 "어째서 눈물이...?"라는 그런 오글거리는 장면.

 

근데 정말로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막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그냥 북받쳐 오는 감정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란 게 와닿더군요. 연출 자체도 좋았지만 인물의 감정연기 하나로 그걸 오롯히 전달하는 게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트럭이 진흙구덩이 빠집니다.

 

그 때 스코필드는 내려서 혼자 정말 죽을 힘을 다해 트럭을 밉니다. 그리고 이내 절박한 표정으로 다른 부대원들을 설득해 트럭을 빼내는데 성공하죠.

 

그리고 그 다음에 똑같은 구도로 트럭 안에 앉습니다. 그러나 눈빛은 아예 달라진 상태. 친구의 죽음에 괴로워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결연의 눈빛으로 바뀌어있습니다.

 

같은 장면에서 감정연기 하나만으로도 분위기를 180도 뒤집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명장면. 1917에 정말 많은 명장면이 있지만 정말 굳이굳이 딱 하나를 꼽으라면 전 그 트럭 씬을 꼽을 것 같습니다.

(한국영화들아, 영화에서 사람 울리는 건 이렇게 하는 거란다 제발)

 

그 이후에도 끊임없이 결연한 눈빛으로 달리지만 마지막에는 절박함이 섞입니다. "제발 전달해야돼!!!" 같은 처절한 절박함. 그리고 그 긴장감이 한 순간, 영국군의 민요 가락에서 잠시 풀어집니다.

 

힘들죠. 15km를 그냥 걷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총맞을지 모르는 각오를 하면서, 동료까지 잃어가며 왔습니다. 다 포기하고 그냥 죽어버리고 싶은 감정인데 그 순간 들려온 노랫소리는 정말 '구원'이라는 감정에 가장 부합해 보였습니다.

 

순간 멍하니... 아무런 표정변화도 없이 노래를 듣는 걸 보면 나도 괜히 옆에서 싸운 기분이 듭니다. 복잡합니다. 이 짓을 왜 하고 있나? 할 수는 있는가? 나같은 놈이 진짜 막을 수 있는가? 등등

 

그렇지만 한 편으로는 정말 극한으로 몰린 감정을 다시 뒤로 물려놓습니다. 이 장면 없이 그대로 편지 전해주러 갔으면 너무 피곤해서 차라리 "어우 그냥 다 관뒀으면..."이란 감정이 관객에게 전달됐을 듯.

 

1917은 정말 조였다 풀었다를 잘합니다. 긴장감 넘치는 전투씬 전에는 꼭 긴장을 확 풀어놓는 장면을 넣어 사람들의 마음을 잠시 녹입니다. 묵직하게만 달리지 않고 쉬엄쉬엄 뛰어가니 관객도 지치지 않고 끝까지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합니다.

 

그렇기에 마지막 장면, 모두가 전장으로 뛰어가는 와중에 횡으로 그들을 가로질러 가는 모습에서 우리는 더욱 절박하게 주인공을 응원합니다. 명장면 하나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영화에서 차곡차곡, 급하지 않게 쌓아올린 감정이 터뜨려지며 만들어지는 거란 걸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 부분.

3. 황홀한 영상미

 

앞에서 정말 전쟁영화가 이런 장면을 만들 수 있는가? 싶을 정도로 화려하다고 했는데

 

그런 장면 두 곳을 꼽으면 첫 번째는 야간전투 씬.

조명탄이 터지면서 폐허가 된 마을을 달리는 주인공.

 

어둡고 칙칙한 야간전투씬이 마치 우주에서 싸우는 장면같이 환상적으로 변합니다. 조명탄이 변하는 각도에 따라 천천히 움직이는 그림자까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은 수준의 장면입니다.

 

그러면서도 총알을 피해 달리는 주인공의 다급함은 가려지지 않습니다. 그림자 속에 있다가 빛에 노출되었을 때의 절박감. 황홀하지만 그 황홀함마저 절박함을 받쳐주는 연장선이 됩니다. 이게 이렇게 되네... 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명장면.

 

이것 때문이라도 영화관 한 번 더 가고싶은 마음. 진짜 아이맥스 마렵다...

 

두 번째는 벚꽃

 

 전장 한 복판에 뜬근없이 진해 군항제마냥 벚꽃밭이 펼쳐집니다.

 

천천히 두 사람이 걸어가며 벚꽃잎을 보며 블레이크는 이건 무슨 종이다, 다른 종도 있다 같은 식물박사 지식자랑을 펼칩니다. 이것이 바로 과수원 아들의 짬이다!라는 걸 보여주면서.

 

이 장면은 그 당시에는 다음에 벌어질 비행기 전투씬을 보여주기 전 잠깐 긴장을 풀어주는 용도입니다. 근데 그렇다고 해도 전장 한 가운데 벚꽃이 휘날리는 모습을 보고있자면 뭐지? 킬빌인가? 싶은 생각만 듭니다.

(일본에서 졸업식 하는 장면도 생각납니다. 뭐야 왤케 낭만적이여)

 

그런데 두 번째로, 블레이크가 죽고 스코필드가 도망치다가 계곡에 휩쓸렸을 때 다시 한 번 벚꽃이 흩날립니다.

 

벚꽃은 엷게 흩날리는 와중에 마치 주인공을 인도하듯 강을 쓸어줍니다. 그때야 앞에 나타났던 벚꽃을 우린 기억해냅니다.

 

과수원 아들래미, 블레이크. 두 번째 나오는 벚나무는 죽은 블레이크를 상징합니다. 그 당시 스코필드는 그냥 너무 힘들어서 통나무를 잡고 있다가도 졸아서 물에 다시 빠질 만큼 절박한 상황에 몰립니다.

 

그러나 흩날리는 벚꽃은 마치 죽은 블레이크가 스코필드를 인도라도 하는 듯 다시 한 번 희망을 불어넣습니다. 전쟁영화에서 꽃잎이 흩날리는 것이 독특한 영상미 외에 이런 감정을 잡아줄 수 있는 것에 진심 감탄하게 됩니다.

 

두 장면 모두 겉으로는 화려한 영상으로 눈을 사로잡지만 주인공의 감정을 강화하거나 전환하는 계기로서도 작용합니다. 단순히 기술자랑이나 눈요기하라고 넣은 게 아니라 인물의 감정을 움직이는 윤활유 같은 존재로서도 그 면모를 보여줍니다.

 

영화에서 '영상미'가 그냥 화려하게 찍는 게 아니라 스토리와 감정에 동화됐을 때 진짜 '아름답다', '황홀하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란 점을 보여주는 아주아주 모범적인 사례로 1917을 꼽아도 좋을 듯.

 

그 외에도 초반의 지저분하고 축축한 참호와 대비되는 2대대의 새하얀 참호, 마지막 횡으로 달리는 씬, 독일군의 부비트랩 등등 꼽으려면 정말 한없이 꼽을 수 있는 명장면 맛집 영화. 장면 하나하나가 이렇게 뇌리에 깊게 박히는 것도 쉽지 않은데 역시 1917이란 생각이 듭니다.

 

4. 마지막으로 다시 정리

 

주인공의 지옥같은 상황에서의 임무 완수라는 아주 감정이입하기 쉬운 스토리 하나를 잡고 모든 화려한 영상미가 그에 맞물려 때려박습니다. 그렇다고 영화가 시종일관 긴장넘치고 무거운 것도 아닙니다. 영화의 전체구조는

 

블레이크의 농담 따먹기 - 부비트랩 - 벚꽃 휘날리기 - 비행기 전투 - 타 부대와의 만남 - 독일군 저격수 - 밤 전투 씬 - 프랑스 출신 여자의 잠깐 휴식 - 다시 독일군과 전투, 계곡물 입수 - 영국군의 민요 콘서트 - 라스트 전투씬 - 끝마무리

 

풀었다 조였다 하는 게 정말 예술입니다. 좀 풀리는 게 지겨워질려는 찰나를 놓치지 않고 바로 긴장감을 펼치고 이 긴장감이 피로해질 때 쯤 다시 관객을 평화로운 전장의 풍경(?)으로 이끕니다. 그렇다고 복잡한 것도 아니고 구조가 영화 처음봐도 파악할 만큼 단순명료합니다.

 

이 영화는 그리고 대단히 고민하고 대단히 무슨 디테일을 찾고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영화관에 들어서는 순간 1차세계대전 전쟁터 한 복판으로 알아서 여러 분은 던져넣어줍니다. 정말 영화 재밌게, 뭔가 다른 거 없이 관람하고 싶은 분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는 영화. 그러면서도 여운은 또 길게 남아요. 어우, OST 또 들으러 가야겠다

 

이상! 1917 후기에서 김나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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