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여행을 가기 딱 좋은 계절
왜냐고요? 우리나라에 있어도 꽃피고 단풍 드는 봄이나 가을은 대충 근처에 돌아다녀도 이쁩니다. 진짜에요. 서울 안에도 벚꽃 명소만 대충 꼽아보면 한 10개는 넘어갈 걸요? 당장 저희 학교에만 와도 진짜 일본 부럽지 않은 벚꽃 실컷 보실 수 있습니다.
겨울이랑 여름은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해도 괴로워요. 그러니까 좀 더 덜 괴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죠. 피서, 피한(?)이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 겨울을 맞아 남들 부러워할만한 여행지로 갔으니!
홋카이도
빰
남들 다 가는 따뜻함보다는 추울 때 더 극한의 추위를 찾아가는, 이항복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이냉치냉이 떠오르는 여행지입니다.
솔직히 오사카를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여행을 대충 구상 중이다가 갑작스레 변경돼서 숙소도 대충 예약하고 비행기도 대충 잡았습니다. 여행 예산이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군요.
가난한 대학생이 시간과 예산에 쫓겨 떠나는 초보 홋카이도 여행. 시작해봅니다.
#코스를 짜보자
여행을 가서 호캉스를 하는 게 아닌 이상 어디를 가는 것이 제일 중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일단 숙소는 어처구니없게도 제가 실수로 예약하는 바람에 강제로 삿포로 4박5일 당첨입니다. 어딜 가든 삿포로에 거점을 두고 움직여야 된다는 소리.
그럼 첫째 날부터 볼까요?
1일차
도착을 하니까 저녁이랍니다. 그것도 7시 넘어서. 심지어 홋카이도는 저기 위에 지도를 좀 더 축소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북한보다 위에 있는 고위도 지방입니다. 덕분에 겨울에는 우리나라보다 상대적으로 해가 빨리 지고 늦게 뜨는 편.
오자마자 깜깜한 밤이 예상되길래 첫 일정은 삿포로에서의 저녁식사와 야경.
저희가 갔을 땐 세계 3대 축제 중 하나라고 주장하는(사실 근거는 없는) '삿포로 눈축제'가 열리기 약 5일 전이었습니다. 왜 굳이 축제를 피했냐면 축제 땐 숙소비가 3배로 뛰는 아름다운 상황이 만들어지더군요. 허헣... 사실 축제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패스했습니다. 홋카이도 초보여행인데 그런 무시무시한 프로들이나 갈 것 같은(??) 축제는 다음에 가보는 걸로.
4박5일이지만 첫 날은 이렇게 날려줍니다. 그래도 생각없이 잡은 호텔이 진짜 좋아서 꿀.
2일차
4박5일이란 촉박한 시간 아래 홋카이도의 모든 걸 보겠다는 일념으로 거의 눕자마자 일어나서 향한 곳은 '비에이'라는 홋카이도 중부의 작은 마을
홋카이도는 솔직히 면허 없이 움직이기에는 너무 넓습니다. 그렇다고 면허가 있다한들 강원도 분이 아닌 이상 경험하기 힘든 거대한 눈밭과 눈길이기 때문에 솔직히 베스트 드라이버가 아닌 이상 제대로 운전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험난한 곳입니다.
결정적으로 저는 면허가 없었기에 가보고 싶었던 비에이는 1일투어의 힘을 빌리기로 결정.
비에이와 후라노라는 지역으로 가는 투어는 여행사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일명 '나무투어'입니다. 겨울에는 눈밭에 있는 예쁜 나무들을 찾아 떠나는 투어가 대부분.
만족스럽긴 했는데 따른 나라 투어에 비해 그렇게 가격이 착하진 않으면서 뭔가 나무만 실컷 보고 오는 게 음... 가성비가 과연 좋은지는 투어 상품을 보고 판단해주세요.
솔직히 나무가 대단한 건지는 모르겠고 진짜 삿포로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끝없는 눈밭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게 장점.
눈도 돈내고 보러 가는 시대. 근데 저는 경상도 남부지역 사람이라 솔직히 이거 돈내고 봤지만 가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눈 좋아
3일차
삿포로는 밤에 본 걸로 된 셈 치고 원래는 이 날 어디를 갈까 고민 중이었는데
2일차 날 투어 가이드 분께서 추천해주신 '노보리베쓰'라는 곳을 가기로 급하게 선회. 그날 밤에 여행계획을 짜서 떠납니다. 살다살다 여행계획이 출발 6시간 전에 바뀌는 걸 봅니다. 이게 바로 진정한 자유여행
5일간 여행지 중 솔직히 제일 인상깊고 또 가고 싶을 정도로 가장 좋았던 곳. 여기를 여행지에 넣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지금도 듭니다. 가이드님 감사감사
'노보리베쓰'는 삿포로에서 대략 1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가면 나오는 온천마을. 일명 '지옥계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진짜 지옥같이 생겼습니다. 다만, 배경이 하얀색이라 뭔가 착한 지옥 같아요. 이게 뭔소린가 싶지만 진짜 그렇습니다. 그래도 유황 특유의 달걀 썩은 냄새는 지옥같습니다.
노보리베쓰는 운이 좋으면 저기 제가 찍은 사진처럼 야생여유를 만날 수도 있고 아니면 진짜 계곡물 자체가 온천수인 만큼 인공이 아닌 온천계곡에서 천연족욕을 할 수도 있습니다.
생긴 건 지옥인데 펼쳐지는 건 천국이나 무릉도원이 따로 없는 것 같아요. 여행계획을 짜면서 여기를 빼버린 과거의 저를 반성시켜 봅니다.
저녁에는 원래 '도야호' 근처에서 열리는 얼음조각 축제에 가보려 했는데 버스가 끊겨서 망. 결국, 안 가도 되는 '오타루'에 갔습니다.
오타루는 사진 빨이 참 좋더군요. 그게 다였습니다.
4일차
이건 정말 미친 짓인가 싶은 걸 4일차는 실천했습니다. 바로 삿포로에서 '하코다테' 당일치기.
삿포로에서 하코다테까지는 기차타고 대략 4시간30분이 걸리는 대장정입니다. 서울에서 부산을 가도 3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세상인데... 하루 중 9시간을 기차에 투자해봅니다. 아침 첫 차 타고 밤 막차 타면 솔직히 하루면 대충 볼 거 다 보는 하코다테 특성상 문제가 될 수준까진 아닐 정도로 일정이 맞춰지긴 합니다.
철저히 계획을 하고 간 하코다테는 오히려 계획이 전부 틀어지는 아주 놀라운 일들이 막 벌어졌습니다.
일단 분명 더 남쪽으로 왔는데 삿포로보다 춥습니다. 뭐지? 눈보라가 몰아쳐서 진짜 홋카이도에 온 기분이 들긴 들더군요. 역시 인프라가 발달한 시베리아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지역입니다.
고료카쿠, 카네모리 아카렌가 창고, 모토마치 등등 걸어서 갈 수 있는 유명한 관광지는 죄다 집어넣었습니다. 그래도 뭐 충분하더라고요?
대신 하코다테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야경을 볼 수 있는 케이블카가 문을 닫았습니다. 눈보라가 아니라 무슨 블리자드가 몰아치는 날씨에 관광객들을 날려버릴 생각이 있지 않는 한 열지는 않겠죠...
몸도 마음도 얼어붙은 채로 무슨 스키야키 같은 몸을 좀 녹일만한 음식이 없나 찾다가 대충 길가다 보이는 '스프카레'집에 들렸는데 아니 이 무슨 인생맛집???????
아직도 생각납니다... 부산에서도 결국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찾았지만 그 맛이 나지 않았어... 스프카레 사랑입니다. 전 이게 진짜 홋카이도 여행 5일 내내 제일 맛있었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유여행의 꽃은 역시 계획대로 되지 않음에 있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은 날이었습니다.
5일차
벌써 마지막 날입니다. 여행의 마지막 날에 오면 드는 생각. "뭐 했다고 벌써 끝이지??"
마지막 날은 멀리까지 갔다가 비행기 놓치면 강제로 여행 더 해야하기 때문에 멀리 가지는 못하고 그냥 삿포로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생각해보니까 삿포로에서 4일간 숙박한 주제에 삿포로에서 본 거라곤 밤에 본 삿포로 테레비 타워가 전부. 삿포로를 너무 홀대한 것 같아서 삿포로 여행지를 찾아내 가봤습니다.
그래도 일본까지 왔는데 신사 하나 안 보면 너무 아쉽지 않나 해서 홋카이도에서 제일 큰 신사인 '홋카이도 신궁'을 아침일정으로 잡았습니다.
모시고 있는 사람 중에서는 메이지 천황도 있다고 해서 기도는 드리지 않았습니다. 신사에 참배드리는 게 나쁜 건 아닌데 천황일가를 모신 곳은 좀... 아무리 여행왔다고 해도 역사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더라고요.
그리고는 돈키호테도 가보고 볼 거 없는 삿포로 시계탑도 가보고~ 평범하게 지내고 밥은 카이센동으로 택했습니다. 다들 별로라 해서 기대를 안 했는데 그냥 회덮밥이라고 생각하니 은근 맛있더군요. 가성비도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이렇게 홋카이도에서의 5일이 끝났습니다. 지나고 보니 이걸 5일만에 돌아본 코스가 나중에 다른 곳 여행 갈 때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아 이 정도로 빡쎄게 잡아도 생각보다 내 몸이 버텨내는구나~ 나중에 오사카 혼자 갔을 땐 몸살이 났는데도 이것보다 2배는 더 빡쎈 일정을 만들어내서 소화했습니다. 한계따위
정리해서 보니 이게 과연 다른 분들이 홋카이도로 떠날 때 얼마나 도움이 될지... 좀 두렵긴 하지만 그래도 제가 이렇게 떠났으니 여러 분은 처음 가더라도 더 알차고 더 즐겁게 여행 계획 짜셔서 가셨으면 합니다.
이상! 김나신이었습니다.
20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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