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나신입니다.
드디어 7번째입니다. 왕릉이나 고분만 모아서 이렇게 쭉 적어보니 제가 생각보다 이곳 저곳 많이 다니긴 했나 봅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 시절 때보단 솔직히 말해서 유적지 탐방에 좀 소홀해졌다는 생각을 늘 스스로 하며 이런 놈이 과연 역사덕후라 인증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어찌됐든~~
저번에는 서울을 다녀왔다면 다시 지방이자 제 고향인 경주로 내려왔습니다. 꼭 첫 번째 여행지는 경주를 소개하고 싶었는데 7번째도 경주~ 이렇게 되면 다음 경주는 13번째 쯤에 얘기해야겠습니다. 핳 전 경주가 너무 좋습니다.ㅋㅋㅋㅋ
그런 경주에서 두 번째로 소개하는 고분은 '괘릉'입니다.
'괘릉'이라고 하면 무슨 소린가 싶습니다. 그럴 때는 한자! 글이 어려울 때는 한자 뜻을 알면 얼추 윤곽이 잡힙니다. 괘릉은 '걸 괘(掛)' 자를 써서 해석하면 '걸려 있는 무덤'입니다.
...와!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이건 잠시 뒤에 얘기하기로 하고 이 무덤의 정확한 명칭은 '원성왕릉'입니다. 신라 38대 임금인 원성왕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라 왕릉은 다만, 29대 '태종무열왕릉'과 42대 '흥덕왕릉'을 제외하면 "기록에 따르면 저 위치에 있다 카더라~~"나 동네 사람들이 "저기 아마 OO왕 무덤일 겁니다~~" 같은 것에 의존해서 100% 정확하진 않습니다.
원성왕릉은 그래도 비교적 맞다는 분위기가 대부분. 김유신장군묘나 신문왕릉처럼 90% 이상 아니다란 수준의 의견은 아닙니다. 저도 아마 원성왕릉이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 아, 여기는 '사적 제26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그런 정도의 정보를 가지고 안으로 들어가 봅시다. 양 옆으로 꽤 울창한 소나무 숲이 빠밤 솟아있고 중간에 잔디가 쫙 깔려 있는 무덤이 보입니다.
이제 그럼 '괘(掛)릉'이 왜 괘릉인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야기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나 왕릉을 만들려고 땅을 파니 물이 솟아나와 워터파크 마냥 묏자리에 물이 고이기 지가했다고 합니다. 문무대왕릉도 아니고 멀쩡한 관을 물속에 잠기게 놔둘순 없으니 무덤 안 방에다가 관을 걸어두는 형태로 해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관이 걸려있는(걸 괘 = 掛) 무덤'이란 뜻에서 괘릉이라는 이명이 붙었습니다. 진짜라면 정말 우리나라에 하나 뿐인 특이한 무덤형태라 꼭 발굴해서 진실(?)을 밝히고 싶지만 경주 김씨 문중에서 허락할리도 없고 오히려 이런 전설은 전설로 남겨두는 게 더 신비롭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파보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습니다.)
독특한 얘기를 생각하며 더 안으로 가봅시다.
이런 전설이 아니라도 괘릉은 정말 특이한 유적인데 바로 '신라왕릉의 완전판'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흐를 수록 조금씩 변하던 신라 왕릉이 가장 화려하고 가장 완벽한 체제를 갖춘 게 바로 이곳, 괘릉입니다.
맨 끝에 십이지신을 새긴 돌과 난간으로 두른 왕릉을 만들고 그 앞으로 쭉 문인석, 무인석, 석사자 같은 석상과 석주들이 쭉 서있습니다. 이런 형식은 당나라 무덤 형태에서 가져온 것.
이 형식은 이후에도 쭉 이어져 제가 그동안 몇 번 소개한 조선왕릉까지 이어집니다. 사실상 우리나라 왕릉 구조를 완성한 첫 사례라고 할 수 있는 만큼 고분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애초에 경주에 있는 신라왕릉 중 '흥덕왕릉', '성덕왕릉' 등과 더불어 가장 구조가 완벽하게 남아있는 몇 안 되는 능 중 하나.
여기에! 이것만 해도 대단한데 또다른 특이점이 있으니 바로 '무인석'.
전에 구리 동구릉에서 소개한 무인석하고는 생긴 게 많이 다릅니다. 눈코 모두 우락부락하고 수염이나 복장도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형태.
현재는 신라와 교류한 '서역인'이 경주에 왔을 때 그 모습에 반해(?) 조각해서 무인석으로 새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좀 의견이 갈리는데 중국 서북부 지방의 '위구르인'이라거나 '페르시아인' 등으로 추정 중. 신라가 중동지방과도 교류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라 교과서에도 자주 단골로 등장하는 모델입니다.
실제로 보면 키도 커서 꽤 위압적입니다. 왜 무인석으로 세웠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믿음직한 외국인 노동자(?))
이제 무덤 근처로 가봅시다. 무덤은 돌난간이 둘러져 있고 이어서 안쪽에는 십이지신이 쭉 둘러져 있습니다. 신라 왕릉 중에서는 정말 거의 없는, 십이지신이 전부 남아있는 희귀한 케이스. 용케도 도굴 안 되고 다들 잘 버텼습니다.
갑옷을 두른 형태인데 전부 남아 있는 만큼 자기 띠를 찾아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근데 잘 모르고 가면 그냥 생긴 걸로는 음?? 이게 내 거 맞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찾는 팁은 비교적 형태가 명확한 '말'이나 '원숭이' 등을 찾은 후 거기서부터 순서대로 자기 띠를 찾는 게 제일 좋습니다.
조각도 꽤 섬세해서 볼만합니다. 역시 볼거리 풍부한 건 괘릉이 최고.
아, 그리고 괘릉 앞에는 비석이 서 있었던 자리가 있습니다.
여기는 1960년대까지 '문무왕의 가묘'라는 비석이 서 있었습니다만, 원성왕릉로 밝혀지면서 없애버렸습니다. 어차피 현대에 만들어진 비석이라 대단한 가치는 없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늘 궁금한 부분은 괘릉이 정확히 정면을 보지 않고 살짝 틀어져 있다는 것. 이거는 무덤 앞에 제사상을 올리는 제단이 좀 삐뚤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왜 굳이 그런지는 묘하게 의문입니다.
그렇게 괘릉을 보고 밖으로 나옵니다. 아, 별 건 아닌데 괘릉 근처 절벽에 꽤나 선명하게 한자가 잔뜩 새겨져 있습니다. 근현대에 새긴 것인지 조각 솜씨가 좀 볼품없긴 해서 별로 중요해 보이진 않지만 뜻이 궁금하긴 합니다.
괘릉은 정말 이거 하나만 보러 와도 좋을 정도로 추천하는 곳. 사람도 적어 한적한 만큼 요즘 코로나로 밖에 바람 쇠러 가기 좀 힘든데 사람들 많이 밀집해 있는 곳을 피해 와보는 걸 조심스럽게 권해 봅니다.
이상! 경주 괘릉에서 김나신이었습니다.
2019.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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