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여행 2일차.
음... 이제 어디가지?

사실 열심히 걸어다닌 덕분에 생각보다 일정이 빨리 끝나서 딱히 어디 갈지를 몰라서 방황하는 중이었습니다.
다른 목적지는 남은 시간동안 가기에는 시간이 촉박해서 그렇고 그렇다고 아예 새로운 데를 가기는 또 그렇고...
그래서 그냥 방황하기로 결정. 앉아서 쉬는 건 할 수 없다. 무작정 모스크바 강을 따라 걷기로 결심합니다. 가다보면 음료수 하나라도 사먹을 수 있는 상점이라도 나오겠지.

강 너머에 있는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도 이제 안녕.
그리고 약 20분을 걸었지만
단 한 개의 상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진짜로)
날씨는 예상 외로 더운데 물하고 음료수는 다 떨어져서 마실 게 절실한 상황이라 열심히 걸어보았지만 정말 아무 것도 없는 강가. 한강은 길 따라 편의점이 즐비하고 수많은 상점가가 별처럼 늘어서 있는데 흑흑... 아까 바가지였지만 그냥 성당 근처에 있던 비싼 물이라도 사오는 건데 하면서 열심히 후회 중이었습니다.
그래도 그 와중에 관광할 거리는 있어서 또 쉬지는 않았습니다.

가는 길에 나온 '아베르키 키릴로브 궁전(Палаты Аверкия Кириллова. Главный Дом Усадьбы)'
러시아 제국 관료 출신이었던 아베르키 키릴로브란 인물의 저택이라고 합니다.

별 거 없는 집.

그치만 개인이 가지고 있는 교회치고는 무척 화려합니다. 아니, 애초에 집 안에 저런 교회가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긴 한데.
러시아 특유의 황금양파들이 올라가 있습니다. 저건 자주 봤는데도 참 질리지 않는 디자인이란 말이야. 어딘가 어릴 때 놀이터가 생각나는 것 같기도 해서 그런 듯.
목은 타들어가고 몸도 마음도 지쳐 가지만 그래도 모스크바 강가가 아름다워서 그럭저럭 참을만합니다. 1000만 도시 한복판에서 아름다운 사막을 걷는 기분 느끼기.

걷다보니 강 너머로 다시 만난 크렘린.

그랜드 크렘린 궁과 이바대제 종탑이 보입니다. 그랜드 크렘린 궁은 강 반대편에서 볼 때 훨씬 예쁘네요.

양파양파

정말 휑한 강가의 길. 버스도 한 대 서는 곳이 없어서 지하철 타려면 30분은 넘게 걸어야 합니다. 이렇게 큰 대로변에서 미아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니. 역시 모스크바.
그렇게 열심히 걷다가 '성 소피아 사원(Храм Софии)'이란 곳이 나와서 안으로 들어갑니다. 태양 빛이라도 피하게 해줘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작은 사원이라 별 거 아닌 줄 알았는데 의외로 17세기에 세워진 오래된 정교회 사원입니다. 역시 무계획으로 들어간 곳도 언제나 가치가 있습니다. 물론 그때의 저는 그런 역사에는 관심 없었고 그냥 태양이라도 피해서 잠깐 앉아있을 곳을 찾고 싶었을 뿐입니다.

검은 양파들이 잔뜩 얹어진 작은 사원.

사원 자체는 작은데 대신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거대한 종탑이 있습니다. 성 소피아 사원이 있는 크렘린 맞은 편 섬의 랜드마크 역할도 하는 듯. 저런 탑만 있으면 너무 올라가보고 싶습니다. 경치 진짜 좋을 것 같아.

온 김에 성당 안으로도 가봅니다.

내부는 작고 조용하네요. 저 빼고는 이콘 파시면서 성당 지키는 분 두 분 빼곤 아무도 안 계셨습니다. 인사 드린 후에 시원하게 실내에서 쉬었습니다. 지나가는 여행자에게 휴식을 제공하는 것. 이것이 바로 종교가 가진 미덕 아닐까...요?

쨌든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성 소피아 사원.

다시 지하철역을 찾아서 걸어갑니다.

그렇게 2km를 하염없이 걸으니 드디어 번듯한 음식점도 좀 있는 시내로 겨우겨우 입성.
너무 목이 말라서 돈 아낀다고 비싸게 안 사먹겠다고 다짐했으면서 결국 비싼 식당 들어가서 콜라를 130루블이나 주고 마셨습니다. 아 시원하고 달콤한 자본주의 맛.
그렇게 콜라까지 열심히 마셔주니 3만보(약 24km)나 걸었다고 알림이 나오더군요. 허허 더 걸으면 내일 못 걸을 것 같아서 빠르게 숙소로 가기로 결정.

드디어 찾은 지하철역.

다시 아르바트 거리로.
유럽여행 하니까 이렇게 별 생각없이 방황하다가 아무 것도 없는 인프라에 당황하게 되는 일이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여유를 가지고 정처없이 걷는 게 물론 자유여행만이 가지는 장점이긴 하지만 체력과 수분보충의 여유를 늘상 만들어두고 그런 짓을 벌이는 게 좋겠습니다.
이상, 모스크바 강에서 김나신이었습니다.
2019.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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