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여행 4일차.
날씨는 춥고 하코다테는 삿포로처럼 지하에 뭐가 있거나 교통이 엄청 좋은 게 아니라서 엄청 걷고 거기에 가고싶었던 하코다테 전망대는 기상악화로 문을 닫고, 열심히 조심해서 걸었는데 빙판에 미끄러지고, 그것 때문에 3000원이나 주고 산 푸딩을 한입도 못 먹고 찌그러트려 버리고...
되는 일이 없는 하코다테입니다. 자유여행이 계획대로 안 되는 건 원래 알긴 알지만 여기만큼은 정말 계획을 잘 짜서 왔는데도 실패의 연속입니다. 원래라면 지금쯤 아름다운 일본 3대 야경 중 하나인 하코다테의 야경을 즐기면서 저 산에서 사진 셔터를 누르고 있어야 하는 건데...
슬픕니다. 원래 스트레스 받으면 먹는 걸로 푼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얼른 맛있는 맛집을 찾아야하는데 슬프게도 하코다테는 저녁을 어떻게 할지 고민을 안 해서 맛집 정보가 제로입니다. 뭐 먹지??
일단 목적지는 야경을 뭐라도 봐야겠다는 심정으로 아침에 다녀왔던 고료카쿠로 향합니다. 거기 엽서파는 곳에서 보니까 야경도 꽤 볼만한 것 같더라고요? 낮에는 눈보라 때문에 솔직히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과연 밤에는 어떨지... 기대 반 걱정 반입니다.
그건 그렇고 전차에서 내려 고료카쿠 전망대를 향해 걸어갑니다. 가는 길에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여줄 뜨끈한 국밥... 은 없을 거고 뭐라도 있나 하면서 구글지도를 열심히 뒤져봅니다. 솔직히 스키야키를 먹고 싶었는데 도대체 하코다테에는 스키야키 집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하...
결국, 찾다가 우연히 가는 길에 '스프카레'집이 있다는 걸 발견, 가보기로 합니다. 어쩌다 찾은 스프카레 맛집, '아시안 바 라마이(RAMAI)'입니다.
지도에서 보이듯이 고료카쿠에서 걸어서 5분도 걸리지 않는 매우 가까운 위치. 그래서 진짜 고로카쿠 가는 길에 들른 겁니다.
일단 '스프카레'란 음식이 대체 무엇인가?
이름 그대로 카레가 걸쭉하지 않고 마치 스프나 국처럼 국물이 있는 형태의 카레입니다. 1971년 홋카이도 일대에서 먹기 시작해서 일본 전국으로 유행처럼 번져나갔다고 하네요. 국물에 몸에 좋은 요리를 이것저것 넣은 일종의 약선요리. 몸에 좋은 카레라 흠... 묘하게 생각이 나질 않는 이미지.
사실 원래는 그냥 바쁜 직장인들이 빨리 밥 말아먹고 가기 위해 만들어진 형태의 음식이었는데 유명세를 타면서 이것 저것 비싼 재료를 넣게 되어 원래 스프카레랑은 조금 많이 달라지긴 했습니다. 게다가 그냥 국물 있는 카레 맛이라는 가이드 분으로부터 듣고 그냥 먹지 말까 싶다가 근처에 있으니 뭐, 가는 겁니다. 솔직히 얼어죽겠는데 카레든 우동이든 국물만 들어가면 뭐든 오케이.
다녀오고 나서야 알았는데 삿포로에 본점을 두고 있는 유명한 스프카레 체인점이라고 합니다. 즉! 삿포로에도 같은 집이 있으니 혹시 삿포로에서 스프카레 맛보고 싶은 분도 추천.
스프카레는 솔직히 베이스가 카레일 뿐 일본음식이나 다름없으나 입구부터 진하게 풍기는 인도 스타일이 뭔가 묘한 느낌을 받게 합니다.처음에는 딱 "여기 뭐야 무서워..." 이 느낌. 우리나라 인도음식 파는데 온 것 같어...
메뉴는 야채, 돼지, 소고기, 닭고기 등 스프카레에 들어갈 기본적인 재료를 고른 후 밥의 양, 토핑, 매운 단계 등등을 정합니다.
메뉴판을 찍지 못해서 사이트에 나온 자료대로 간단하게 메뉴를 옮겨 적으면
채소 : 1100엔
치킨 : 1200엔
돼지 : 1200엔
새우 : 1200엔
타후고렌(두부튀김) : 1200엔
부힛(돼지 샤브샤브?) : 1200엔
소고기 : 1200엔
정도가 됩니다. 여기에 토핑으로 달걀 등을 얹는 형태. '채소'는 말 그대로 채소카레입니다. 베지 스프카레라고 해야하나?
전 비프카레(소고기 카레)에 계란 후라이(120엔) 추가해서 먹었습니다. 여기에 콜라까지 추가해서 대략 1400엔 정도 나왔습니다. 카레치고는 조금 비싸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뭐, 요즘 일본 카레집들도 기본 1만원 이상은 하니까...
그렇게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드디어 기다리던 스프카레님께서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일단 비쥬얼 깡패
큰 기대를 안 했는데 재료도 너무 풍부하고 일단 진짜 먹음직스러워 보입니다. 카레보다는 화려한 스튜라는 느낌이 더 강합니다.
대충 기억나는 것만 얘기해도 소고기를 비롯해 연근, 피망, 양배추, 메추리 알, 가지, 아스파라거스 등등... 왜 비싼지 확실히 알게 해주는 음식. 재료를 이렇게 때려박았는데 안 비쌀 수가 있겠습니까. 갑자기 확 납득이 가기 시작하는 가격.
맛은 진짜... 밖이 추우니까 더 배가 되는 맛. 그냥 국물 있는 카레라는 말이 정답이긴 하지만 짭짤하면서도 속재로 맛이 풍부하게 우러나온 우리나라 탕요리 같다는 생각도 들 정도로 맛있었습니다. 카레계의 '삼계탕'이라고 해도 될 것 같은 느낌. 사실 이렇게 맛있고 몸에 좋은 재료를 팍팍 넣었는데 안 맛있으면 그게 이상한 거긴 합니다.
계란 추가도 신의 한 수. 여러 분 꼭 계란 추가해서 먹으세요. 두 번 먹으세요. 일본 특유의 반숙 계란 후라이랑 카레의 조화가 너무 좋습니다. 밥을 스프카레 국물에 살짝 적셔서 계란 후라이랑 먹으면...
하♥ 그래 이게 진짜 맛집이지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아, 그리고 여담인데 여기 화장실이 진짜 특이합니다. 무슨 인도스러운 건 다 때려박은 느낌. 하필 카레 먹는 리뷰인데 화장실 사진 보면 거북하실 수도 있으니 그냥 인테리어만 살짝 보여드립니다.
하코다테 전망대 못가서 살짝 우울하던 찰나에 맛집 하나 제대로 건져서 간만에 잘 먹었습니다. 행복합니다.ㅎ
암튼, 밥도 든든하게 먹었으니 오늘의 마지막 일정, 고료카쿠 타워로 다시 떠납니다.
이상! 하코다테 스프카레 맛집 라마이에서 김나신이었습니다.
2019.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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