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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여행/수즈달 Суздал & 블라디미르 Владимир

[모스크바 근교 여행]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철도 2등석 간접체험 : 러시아 할아버지의 무용담(?)을 들으며 떠나는 밤기차 여행 - DAY.4

유럽여행 4일차, 러시아 블라디미르입니다.

 

당일치기로 수즈달과 블라디미르 여행을 끝내고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가야할 시간. 기차시간이 영 애매해서 어쩌다보니 시간이 좀 남긴 했습니다.

그래서 어제 밤에 봤던 마트 옆 식당에서 대충 저녁도 먹고 시간도 때울 겸 가보기로 했습니다.

 

위치는 여기. 음식점 이름은 너무 길어서 읽기 귀찮고 그냥 블라디미르역에서 제일 가까운 마트 1층 입구 근처에 있습니다. 찾기 매우 쉬워요.

(흔한 마트 옆 식당 풍경)

메뉴는 햄버거랑 피자, 또띠아, 러시아 전통 수프인 보르시 등을 파는 것 같았습니다.

 

지갑사정이 영 좋지 않은 와중에 메뉴들이 저렴한데 생긴 것도 너무 맛있어보여서 보르시 하나랑 햄버거 하나 주문했습니다. 합쳐서 가격은 단돈 150루블(약 2,400원).

 

아니 수프에 햄버거까지 시켰는데 150루블이라니 이거 너무 혜자아니야??

.....

.....

 

 

편의점 비쥬얼로 등장. 역시 이유없이 비싼 건 있어도 이유없이 싼 건 없습니다.

 

그래도 맛은 있었습니다. 햄버거는 그냥 캐첩 바른 고기빵이었지만

기분나쁘게 배를 채운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한 채로 이제 블라디미르역으로 갑니다. 낮에 보니까 역이 성 같이 생겼네요.

언덕 너머로 보이는 아까 갔다온 수도원.

노을이 지는 기차역. 제 지친 몸과 같은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여행 4일만에 부서지고 있는 캐리어. 유럽이 길이 썩 좋은 편이 아니라 캐리어 끌고 장기여행 다니기 힘듭니다. 왜 유럽에서 여행 온 사람들이 죄다 큼지막한 백팩 매고 오는지 깨달았습니다.

 

미리 한국에서 인쇄해 온 기차표에는 좌석 안내가 좀 알아보기 어렵게 되어 있어서 이번에도 물어물어 겨우 찾았습니다.

드디어 모스크바행 기차 도착.

 

저번에는 좌석이 있는 고속열차를 탔는데 이번에는 시간대에 맞는 게 없어서 조금 느리게 가는 침대기차를 탔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 넘어갈 때 타려고 했던 건데 어쩌다보니 간접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좌석은 더 좋은 2등칸.

 

근데 가격이 무려 2,312루블(약 43,000원)!!!! 아니 고속열차보다 비싸다니 너무 한 거 아니야

....라고 하기에는 좌석이 좀 좋긴 했습니다.

 

낮이나 저녁에는 의자로 쓰고 밤에는 누워서 침대로 쓰는 4인 1실이 2등칸. 문도 닫을 수 있고 에어컨 비스무리한 것도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뭐지 숙소보다 나아 보이는데?

 

묵직한 짐을 끌고 일단 제 자리에 도착. 완행이라 2시간40분이나 걸립니다.ㄷㄷ

제 방.

낮이나 오후에는 2층침대에 있던 사람들이 밑으로 내려와 1층침대를 좌석을 같이 씁니다. 그래서 잘 때는 1층이 편한데 낮에는 자기만의 공간 확보가 어려워서 2층이 더 좋기도 하고... 선택은 여러 분의 몫.

 

제 자리는 4인 꽉꽉 채워서 갔는데 할아버지랑 손녀딸, 어떤 아주머니랑 같이 갔습니다. 처음에는 여자 아이가 아주머니 딸인 줄 알았는데 오늘 처음 보는 사이

(오늘의 주인공 할아버지)

 

기차 안의 유일한 동양인이자 여행객이라 그런지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이상하게 제 외모가 국적 막론하고 어르신들한테 말 걸고 싶게 생겼는지 여행 가면 꼭 어르신이랑 대화하는 상황이 늘 벌어집니다.

 

...문제는 저는 한국인이고 할아버지는 평생 러시아에서 사신 찐 러시아인. 그렇습니다. 영어도 안 통하는 상황에서 대화를 이어간 비결은

우리의 통역사 '샤샤'가 있었기 때문.

 

할아버지랑 같이 탄 손녀 같았는데 저보다 영어를 잘했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 덕분에 할아버지께서 러시아어로 뭐라고 말씀해주시면 영어로 번역해서 알려드리고 제가 영어로 말하면 다시 러시아어로 바꿔서 얘기해주었습니다.

 

샤샤... 너 크게 될 아이야. 벌써 2개국어를 마스터하다니

기차에서 입이 심심하지 말라고 도시락 같은 것도 꺼내주셨는데 햄이랑 빵이랑 대추보다 조금 큰 것 같은 사이즈의 사과까지 너무 퍼주셨습니다.ㅠㅠㅠㅠ 지금 생각해도 정말 감사합니다... 아까 부실하게 먹은 저녁은 진짜 계속 주셔서 빵빵하게 채웠습니다.

기차에서 제공하는 찻잔. 기차에서 제공하는 것치고는 너무 예술적으로 생겼습니다.

그리고 티백. 러시아에서는 진짜 어느 상점을 가든 흔하게 볼 수 있는 차 브랜드입니다. 맛은 그냥 차입니다. 제일 베이직한 맛.

 

러시아는 일반적으로 차에다가 설탕을 넣어먹습니다. 이게 녹차에 설탕넣는다고 생각하면 좀 이상할 순 있어도 적응되면 꽤 중독성이 있습니다. 밀크티도 그렇고 유럽에서는 차에타 설탕이나 우유 타 먹는 게 흔한 일상.

(모두가 마시는 차)

 

사실 차보다 저 햄! 햄이 진짜 존맛이었습니다. 예전 러시아 연수 갔을 때도 생각한 거지만 유럽의 햄과 치즈는 정말... 우리나라랑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어요.ㅠㅠㅠ 러시아가 마지막 여행지였으면 잔뜩 사서 한국으로 가져오는 건데

(그리고 2시간 넘게 이어진 할아버지와의 썰)

 

제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한국 술을 안다며 사케를 계속 얘기하셨습니다. (그거 일본 술입니다) 기타 일본어 몇 마디를 덧붙여주셨습니다. 연세가 많으시니 헷갈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굳이 얘기는 안 했습니다. (저도 러시아어 잘 할 줄 모르는 쌤쌤이)

 

문제는 연세가 많으시다보니... 소련 시절 만난 한국인들을 생각한 건지 나오는 내용이 아무래도 저를 '북한 사람'으로 보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 하필 제 성씨가 김씨라 김일성, 김정일 얘기 나온 건 덤.

 

거기에 미국 욕을 엄청 하시면서 미국 비행기를 폭탄으로 추락시켜 320명이 죽었다는 얘기를 계속 하시던데 네??

(빵과 햄, 사과에 차까지 얻어먹은 상황이었던 만큼 저는 미국 욕을 같이 했습니다. 자본주의 만세)

 

암튼, 그냥 일본말 쓰는 북한 사람(???)인 걸로 하고 이것저것 얘기하며 한 50% 정도의 의사소통으로 계속 이어갔습니다. 잘 통하는 건 아니어도 그런대로 뭔가 대화가 통한다는 게 신기하긴 했어요.ㅎㅎ 

(나갈 때 또 얻어먹은 사탕)

 

저도 나름 러시아랑 인연이 있어서 국립 노보시비르스크 대학교에서 연수한 거랑 제 전공 등등 얘기해드렸습니다. 전공 탓인지 우리나라든 외국이든 왜인지 정치, 역사얘기가 늘 메인주제가 되는 것 같어... 저번에 영동 여행 갔을 때도 할아버지의 정치얘기에 휘말렸는데 그냥 제 운명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덕분에 인터넷도 안 터지는 기차 안에서 재밌게 지내다 올 수 있었습니다. 러시아 연수 때도 러시아 사람이랑 이렇게 오래 얘기 안 해 본 것 같은데ㅋㅋㅋㅋ 재밌는 경험이었네요.

 

열심히 얘기하다보니 종점인 모스크바에 도착. 할아버지랑 통역을 도와준 샤샤랑은 작별인사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다음에 러시아 갔을 때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틀만에 다시 돌아온 모스크바 지하철.

저녁시간 때라 그런지 한적한 지하철역.

새로운 모스크바의 숙소를 향해

다시 떠납니다.

 

조금은 짧게 느껴졌던 수즈달, 블라디미르 여행도 이렇게 끝. 모스크바 근처에서만 3개의 도시를 다녔는데 모스크바 이상으로 기억에 남는 일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도심 속 여행은 이미 많이 찾아봐서 그런지 아, 블로그나 책에서 봤던 곳이다! 란 약간의 익숙함이 기초적으로 있었지만

 

주변 도시들은 그런 게 많이 없다보니 어딜 걸어가든 늘 새롭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음에도 꼭 다시 한 번 찾아가보고 싶네요.

 

이상, 블라디미르에서 김나신이었습니다.

 

2019.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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